조회 : 5436     날짜 : 2009-10-28
제목 : 2009.08.28(금) 동아일보-[아하, 이맛!]무교동 낙지
원문 http://www.donga.com/fbin/output?n=200908280019
머릿속 하얗게 비우는 ‘빨간 맛’

전옥례 씨(57)는 낙지도사다. 서울 무교동낙지골목에서 무려 43년 동안이나 낙지와 더불어 살았다. 전 씨는 1966년 나이 열넷에 서울에 올라왔다. 고향은 전북 김제에서도 한참 더 들어가는, 찢어지게 가난했던 초가마을. 어느 날 부모 몰래 무작정 보따리를 싸서 탈출했다.

그렇게 자리 잡은 곳이 서울 광화문우체국 뒤(현재 수출보험공사 건물) 낙지볶음전문점 실비집. 그때부터 전씨는 무려 34년 동안 그 집에서 일했다. 1983년 결혼하기 전까지는 아예 그곳에서 먹고 자며 지냈다. 주방 허드렛일부터 손님 잔심부름까지 안 해본 것이 없었다. 차츰 주방일도 어깨너머로 익혔다. 단골들은 언젠가부터 그런 전씨를 “막내야∼”라고 불렀다. 귀엽고 예쁘다고 용돈도 조금씩 손에 쥐여줬다. 어느 땐 그런 돈이 한 달 월급보다 더 많았다. ‘막내’ 전 씨는 그 돈을 거의 쓰지 않고 악착같이 모았다.

1965년 실비집 주인 박무순 씨는 서울장안에서 처음으로 매운 낙지볶음을 선보여 큰 인기를 끌었다. 그 전까지는 살짝 데친 낙지를 초고추장에 찍어먹는 게 전부였다. 실비집 주변에 낙지집이 하나 둘 생겨나기 시작한 것도 바로 그 무렵이었다. 사람들은 자연스레 그곳을 ‘무교동낙지골목’이라고 불렀다. 행정구역상으로는 종로구 서린동이지만 한번 굳어진 이름은 바뀌지 않았다.

실비집은 1970년대 중반 재개발에 따라 길 건너 청진동으로 옮겼다. 다른 낙지집들도 청진동 쪽으로 대부분 이사왔다. 무교동낙지골목이라는 이름도 그대로 따라왔다. 실비집 주인 박 씨도 1993년 이강순 씨에게 가게를 넘기고 큰아들을 따라 남미 파라과이로 이민을 떠났다. 하지만 ‘막내’ 전 씨는 실비집에 계속 남았다.

2000년 박 씨가 다시 고국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작은아들과 함께 실비집 부근에 원조할머니 낙지센타(02-734-1226)를 열었다. 그러자 실비집을 운영하던 이강순 씨가 가게이름을 이강순 실비집(02-732-7889)으로 바꾸고 상표등록까지 마쳤다. 막내 전 씨도 박 씨가 돌아오던 그해(2000년) 실비집을 그만두고 드디어 막내낙지(02-736-0824)란 가게를 열어 독립했다.

‘몸으로 갈 수 있는 길이/얼마나 된다고//접시 속 낙지의 몸이/사방으로 기어나간다/죽음도 받아들이지 못하는 정신의/몸은 힘차다//몸으로 다다를 수 있는 세계도/무궁무진하다는 듯/죽은 정신이라도 이끌고/다른 세계로 갈 수 있는 것은/몸뿐이라는 듯’ (조은 ‘낙지’)

낙지볶음의 낙지는 ‘냉동낙지’이다. ‘죽은 정신이라도 이끌고 가려던’ 그 억센 힘은 모두 꽁꽁 얼어붙어, 무심한 고깃덩어리가 되었다. 대부분 중국에서 들여온다. 이강순실비집은 봄에 대형 컨테이너로 들여와 거의 1년 동안 쓴다. 서울 강남북에 체인점이 11곳이나 될 정도로 규모가 커져 수요도 엄청나다. 원조할머니 낙지센타도 중국 칭다오에서 가져다 쓴다. 막내낙지나 서린낙지(02-735-0670)는 한 수입업자가 두 집 모두 공급해준다.

낙지볶음은 매운맛으로 먹는다. 매운맛은 ‘맛이 아니라 통증’이다. 혀가 얼얼하다. 얼굴이 화끈거린다. 콧잔등에 땀이 송골송골하다. 단무지를 혓바닥 위에 가만히 얹어 문다. 들큼하고 짭조름한 단무지 물이 저릿하게 스며든다. 통증이 조금 눅는다. 콩나물무침도 한입 가득 문다. 깨물지 않고 혀로 살살 굴린다. 콩나물다리가 톡톡 터지며 비리고 연한 즙이 나온다. 슴슴하고 풋풋하다. 매운 기운이 스르르 빠진다. 좀 낫다. 콧잔등의 땀을 훔친다. 문득 목 뒷덜미가 시원하다.

조개탕은 마지막 특효약이다. 옛날엔 대합을 썼지만 너무 비싸, 요즘엔 모시조개로 국물을 낸다. 대파를 큼직큼직 어슷하게 썰어 넣고, 다진 마늘 등 갖은 양념을 넣는다. 소금으로 간을 맞춘 뒤 뽀얀 국물이 나도록 펄펄 끓인다. 한 숟가락 떠 마시면 혓바닥 모세혈관사이에 잠복해 있던 매운 기운이 우우우 일어난다. 알싸하고 아릿하다. 죽었던 매운맛들이 마지막 몸부림을 친다. 몸의 말초신경들이 간질간질 어찔어찔하다.

피맛골 재개발로 무교동낙지집들은 또 떠밀리듯 자리를 옮겼다. 이강순실비집은 인근 르메이에르빌딩 1층 입구에, 그리고 햄 소시지 베이컨 불판으로 유명한 서린낙지는 같은 빌딩 2층에 자리 잡았다. 막내낙지는 르메이에르빌딩 뒤편 아늑한 단층집으로 옮겼다. 원조할머니 낙지센타는 아직 그 자리에 그대로 있다. 건물주와 재개발회사와의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 하지만 서울시청 앞 플라자호텔 뒷골목 소공동우체국 옆에 3층 건물을 마련했다. 이곳이 헐리면 그곳에서 다시 시작할 계획이다. 지금 전화번호도 그대로 가져간다. 올해 아흔두 살의 박무순 할머니는 지금도 낙지와 매일 놀 정도로 정정하다.

낙지볶음은 타이밍이다. 살짝 데친 낙지를 어떻게 볶느냐에 따라 맛이 달라진다. 오래 볶으면 질기고, 너무 짧으면 푸석한 맛이 난다. 막내 전 씨는 “고춧가루가 좋고 낙지가 좋아야 볶음 색깔이 예쁘게 나온다. 낙지볶음은 고춧가루 옷을 잘 입어야 맛있다. 물 많은 낙지는 양념이 배지 않아 따로 논다. 처음엔 센 불로, 그 다음엔 약한 불로 볶는다. 우리 집엔 무교동낙지골목에서 40년 동안이나 손맛을 키운 이양순 할머니(70)가 주방장을 맡고 있다. 재료도 낙지 빼고는 모두 국산만 쓴다.”고 말했다.

무지무지 스트레스가 쌓이는 날, 뒷덜미가 뻐근하고 머릿속에 쥐가 나는 날, 가슴속이 홍어처럼 썩어 문드러지는 날, 문득 매운 것이 미치도록 먹고 싶다. 칼칼한 것이 환장하게 먹고 싶다. 매운 낙지를 한입 가득 넣고 맴맴 마당가를 돌고 싶다. 한방에 콧구멍을 ‘뻥∼’ 뚫고 싶다. 모두들 ‘입덧’을 하고 싶다. 김화성 기자 mars@donga.com